물고기는 물과 싸우지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않는다고 했던가!
주(酒)의 옛 글자는 유(酉)이다.
유(酉)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로 침전물을 모으기 쉽도록 밑이 뾰족한 항아리 속에서 술을 발효시켰던 데에 유래하였다.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고 했다.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즐거울 때뿐 아니라, 시름을 잊기 위해서도 술을 마시고 있다.
잔을 한번에 비우는 것을 明(명)이라 하고,두 번에 비우는 것은 周(주),세 번에 비우는 것은 進(진)이라 하며,세 번 이후는 遲(지)라 하고,아홉 번이 지나도 잔을 비우지 못 하면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는다.
술은마시면 취하나 술 취하는 데에도 4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긴장된 입이 풀리는 해구(解口), 곰보도 예뻐 보이는 해색(解色),억눌려 있던 분통이나 원한이 풀리는 해원(解怨), 인사불성이 되는 해망(解妄) 이라고 했다.
그래서 술은 적당히 마시라고 했다. 술 때문에 재산을 날리고 몸까지 망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술이 지나치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 임금들은 아끼는 신하에게 하루에 3잔 이상 마시지 못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술도 술 나름이다. 어지간하게 마셔도 괜찮은 술이 있다.
요즘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더 나아가 미국등지에서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주, 막걸리다. 향수와 낭만이 깃든 막걸리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사로도 애창되었다.
우리서민 애환담긴 막걸리를 먹어보세 돈없는놈 가난한놈 한잔이면 그만이지
일할때도 막걸리고 밥먹을때 막걸리라 우리곡식 곱게담가 다둑다둑 막걸리고
힘든농사 결실맺힌 우리농산 곡주니라 연인이랑 막걸리로 걸죽한정 이어보세
친구들과 한잔두잔 따스한정 막걸리라 영양많고 맛도좋은 막걸리를 먹고먹어
스테미나 정력부족 막걸리로 해결하세 이어가는 손끝마다 막걸리향 정이돈다
쌀막걸리 사랑하고 가짜들은 멀리하세 진짜곡주 약이되고 화학주는 병이된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우리걸리 사랑하세
막걸리는 왜 좋은가. 막걸리는 5가지 덕 즉 '오덕(五德)을 갖추고 있는 술이다.
막걸리를 마셔도 취하지만, '해망' 단계에 이를 만큼 취하지는 않는다.
막걸리를 출출할 때 마시면 요기가 된다.
힘 빠졌을 때 막걸리를 마시면 기운이 난다.
막걸리를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안 풀리던 일도 풀린다.
막걸리를 여럿이 더불어 마시면 묵었던 앙금이 가라앉는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는 더 있다. '삼반(三反)'이다.
반유한적(反有閑的)인 술이다. 막걸리는 농사짓고, 일하는 사람이 마시는 술이다. 놀고 먹는 사람이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이 나오며 숙취를 일으킨다.
반귀족적(反貴族的)인 술이다. '강화도령' 철종 임금은 온갖 귀한 술을 입에 맞지 않는다며 내쳤다. 그리고 서민적인 막걸리만 찾았다. 막걸리는 서민 술이다.
반계급적(反階級的)인 술이다. 잔칫날 막걸리 파티가 열리면 온 마을 사람이 돌아가며 마셨다. 막걸리는 평등한 술이다. 화합의 술이다.
그런데, 이 막걸리가 다시 인기를 끌면서 '5덕과 3반 이미지'가 좀 퇴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고급 막걸리 선물세트'가 등장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고려 시대의 고급 탁주인 '이화주'를 복원한 '법고창신 이화주 선물세트'라는 것이 나왔다 한다. 이 선물세트는 750㎖ 이화주 1병과 고급 백자로 만든 전용 약주 주전자와 술잔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격이 7만5천 원이나 된다고 한다.
웬만한 와인은 물론이고, 양주보다도 비싼 가격이다. 그야말로 '귀족적인 막걸리'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움추린 경제에 추석 맞는 서민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막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