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에 새겨진 두 글자 조선 선조 때 사람인 홍순언은 어진 성품의 선비였다. 그가 통역관 자격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금의 여관 격인 기루에 머무른 그는 거기서 한 기생을 만났다.
그 기생은 본래 양반집 규수로 정치적 모함으로 죽은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생이 된 여인이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홍순언은 출장비로 받아 온 인삼을 팔아 그 돈을 장례비로 쓰라며 기생에게 주었다.
기생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홍순언의 이름석자를 가슴에 새겼다.
그러나 홍순언은 조선으로 돌아온 뒤 공금을 낭비했다는 죄목으로 관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편 홍순언의 도움으로 무사히 장례를 마친 기생은 명나라의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석성이란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비단을 열심히 짜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선조가 명나라에 원조를 요청하는 통역관을 보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 명나라로부터 전에 자주 오던 통역관 홍순언은 왜 보이지 않느냐 며 다음엔 그를 보내라는 서한이 날아왔다.
시골에 파묻혀 지내던 홍순언은 선조의 명령으로 다시 명나라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명나라 국방장관의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홍순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국방장관과 그의 아내가 댓돌 아래까지 내려와 깍듯하게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국방장관의 아내가 바로 홍순언의 도움을 받은 그 기생이었다.
며칠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은 홍순언은 떠나는 날 부인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홍순언이 이를 한사코 마다했더니 압록강까지 쫓아와 선물꾸러미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선물을 받아 풀어보니 꾸러미엔 부인이 손수 짠 비단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비단끝 마디마디에는 '보은'이란 두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홍순언이 조선으로 돌아와 보니 선조가 왜군에게 쫓길 정도로 전세가 기울고 있었다. 얼마 후 무기, 화약, 그리고 4만여 명나라 군사가 조선에 파병되었다.
명나라 국방장관이 보낸 것이었다.
보은이란 이런 것이.........
(박종길 시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