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가
2007년 당진의 베트남 결혼이민자 ‘후안마이’(19세), 일 년 후 경산에서는 감금되었던 베트남 결혼이민자가 아파트 14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2009년 뱃속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초은’(캄보디아, 18세), 2010년 부산에서 베트남 결혼이민자 ‘탓티황옥’(20세)씨가 한국으로 이주한지 8일 만에 무려 57회 정신병원의 치료를 받은 정신 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살해되었고, 삼 개월 후 나주에서 몽골 결혼이민자의 살해사건이 발생한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사이 변화된 것은 무엇인가? 지난 5월 24일 한국인 남편의 흉기에 찔려 숨진 베트남 아내 황모(23) 씨의 어머니 '응엔 티 호아'(56) 씨가 26일 입국, 딸을 잃은 엄마의 슬픔에 힘겨워하면서도 사위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갖가지 사건 발생이후 국회나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해당 정부부차와 각 사회단체들은 법과 제도의 각종 문제점들을 나열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하여 부산을 떨어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일한 경로로 국제결혼정보회사에 의하여 많은 외국인 신부가 한국으로 이주해 오고 있으며, 계속하여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비극이 발생하고 나면 늘 해당 부처 장관이 사죄하고 위로금 전달하며,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하곤 했다.
부산의 ‘탓티황옥’ 비극 이후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그나마 법무부의 국제결혼 비자 신청 시 자격 요건을 강화한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결혼과 이민자의 사회통합과 관련된 각종 문제점을 이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사적 영역으로만 취급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파장이 뒤따른다.
베트남 황모(23)씨의 어머니 ‘응엔 티 호아’(56) 씨는 “날씨와 건강상태 문제에다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잘 설득하고 이해하도록 안내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며 “내 딸에게 못해준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잘해줬으면 한다.”고 말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황 수언 하이’ 베트남 부대사는 “베트남에서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가 퍼질까 걱정된다.”며 “한국정부가 나서 예방대책과 교육을 통해 이주여성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분의 이해 당사자의 말을 우리 사회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잘 설득하고, 이해하도록 안내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말과 부대사의 ‘예방대책과 교육을 통해 이주여성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라는 말 속에 한국의 다문화사회의 진전에 따른 사회적응지원을 위한 다문화정책 방향이 다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귀중한 소를 얼마나 더 잃어야만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2050년에 국제결혼이민자와 그 자녀가 216만 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넘어서고 외국태생인구가 총인구 대비 비율이 5.1%를 넘어서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저출산과 노령화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가 가장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 대안으로 적극적 이주정책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에 부응하여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많은 정부부처를 비롯하여 지자체별로 다양한 ‘다문화’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한국어와 한국문화와 직업교육 등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직시하여 이제부터라도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국제결혼이민정책 및 제도가 수립되어야 한다. 국제결혼을 오로지 사적(私的)영역으로 방치하기에는 그들이 감당해야할 것들이 너무 버겁다. 튼튼하고 훌륭한 외양간을 만들기 위하여 위정자 뿐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은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게 논의하고 그에 합당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좋은 정책과 제도라 할지라도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제도의 실행 성공은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적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이다. 외국인 120만 명 시대에 이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로 우리 모두에게 선뜻 다가와 있다. 정부 전 부처가 양적으로만 쏟아내는 허울 좋은 ‘다문화정책’과 전시효과에 치우친 일방적인 동화의 강요는 변화하여야 한다.
상호 존중과 소통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질적으로 나아지는 어울림사회로서의 ‘다문화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더 이상 결혼 이민자가 아닌 인천댁으로 불려 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