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 월 회보
韓國道德運動協會仁川廣域市支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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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 바로 쓰기 1
1. 한글 자음이름
영어의 알파벳은 알면서 한글 자음은 제대로 모른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지식 이전에 국어를 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상식입니다.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옷 ㅇ-이응 ㅈ-지읒 ㅊ-치읓 ㅋ-키읔 ㅌ-티읕 ㅍ-피읖 ㅎ-히읗 이 중에서도 특히 'ㅌ'은 많은 분들께서 '티긑'으로 발음합니다. '티긑'이 아니라 '티읕'입니다.
2. [~습니다] 와 [~읍니다]
"우리글, 우리말의 기본 규정이 바뀐 지가 9년이 넘는데도 아직까지∼습니다와 ∼읍니다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출판을 계획하고 있읍니다.'로 쓰인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전에는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썼기 때문에 혼동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조건 ∼습니다로 쓰면 됩니다. 그런데 있음, 없음을 있슴, 없슴으로 쓰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때에는 항상 있음, 없음으로 써야 합니다. “
3. [~오] 와 [~요]
"종결형은 발음이 ∼요로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항상 ∼오로 씁니다.돌아가시오, 주십시오," "멈추시오 등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연결형은 ∼요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이것은 책이요, 그것은 펜이요, 저것은 공책이다.」의 경우에는 요를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
4. [안] 과 [않∼]"안과 않도 혼동하기 쉬운 우리말 중의 하나입니다. 안은 아니의 준말이요, 않은 아니하의" "준말이라는 것만 명심하면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소비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문장에서 않으면은 아니하면의, 안은 아니의 준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5. [∼이] 와 [∼히]
"깨끗이, 똑똑히, 큼직이, 단정히, 반듯이, 가까이 등의 경우 ∼이로 써야 할지 ∼히로 써야 할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원칙은 없지만 구별하기 쉬운 방법은 ∼하다가 붙는 말은 ∼히를, 그렇" 지 않은 말은 ∼이로 쓰면 됩니다. 그러나 다음에 적어 놓은 말은 ∼하다가 붙는 "말이지만 ∼이로 써야 합니다. 깨끗이, 너부죽이, 따뜻이, 뚜렷이, 지긋이, 큼직이, 반듯이," "느긋이, 버젓이 등“
{우정의 향기가 그립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친구는 드물다.
내게는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만 우정이 향기가 나는 친구가 있다.
어떤 인연 인지는 몰라도 옛 선비 최 원도처럼 가족이상으로 가까이 지내고 있다. 지금 그는 외국병상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서로를 그리면서 살아간다. 친구하면 옛 선비 최 원도가 떠오르게 한다. 신돈이 세력을 부리고 있던 고려 말 사람이며 경상도 영천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반쯤 미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실제로 그는 한 끼에 밥 세 그릇을 먹어치우고 방안에서 용변을 보고 또 자기 방 근처엔 아무도 얼씬 못하게 하는 등 증세가 자못 심각했다.
수상쩍게 여긴 아내는 남편의 수발을 들고 있는 계집종을 조용히 불러 남편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 이유를 밝혀내라고 지시했다. 결국 남편은 벽장 속에 낯선 두 사람을 숨겨두고 일부러 미친 척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 두 사람은 고려 말의 충신인 광주 땅에 사는 이집과 그의 아버지 이당이었다. 신돈의 포악한 정치를 상소했다가 신돈에게 발각되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이집은 아버지를 업고 아버지의 친구인 최씨 집까지 피신했던 것이다. 그들은 2년 여 동안 벽장 속에 숨어 살았으며 최 원도는 그동안 미치광이 노릇을 계속하였다. 한편 최 원도의 아내는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여종이 비밀을 누설할까 걱정을 하자 종은 자진하여 사약을 기꺼이 마셨다. 이렇게 진실한 친구의 우정과 여종의 절의로 이 집은 살아남아 당대의 정신적 지주로 이름을 날렸다.
나 또한 그가 있는 한 벅찬 행복을 맛본다.
친구야 쾌유를 빈다. 단풍이 예쁜 꽃들처럼 물들고 있구나, 너에게서 풍기는 우정의 향기가 그립다.
-대동야승과 황희
황희 정승하면 어린이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는 조선조의 어진 재상이요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분이다. 고려의 신하로 나라가 망하자 두문 동에 은거했으나 조선 태조가 간청 신하가 되었다. 세자의 폐출에 반대하여 유배되었다가 세종 조에 풀려나 가장 신임 받는 재상으로 명성을 높였다.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는 도량이 넓어 작은 일에도 꺼리지 않고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겸손했다. 그런 만큼 명재상으로서의 일화를 많이 남기고 있다.
특히 어린이를 많이 사랑한 듯 어린이에 관한 것이 많다. 아이들이 좌우에 몰려들면 으레 울고불고 장난치고 시끄럽기 마련인데 조금도 이를 못하도록 막지 않았다.
혹 수염을 잡아당기는 녀석이 있어도 상관치 않았다고 한다. 식사 때도 어린것들이 모여들어 서로 더 먹겠다고 다투면 자신의 밥그릇에서 덜어주며 웃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대동야승’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연로하여 사퇴하고 사저에서 종일 독서로 소일하던 때이다. 방밖에 서리 맞은 복숭아가 잘 익었는데 이웃 아이들이 와서 함부로 따느라고 소란스러웠다. 그러자 그가 ‘나도 맛보고 싶으니 다 따가지는 말아라. 했는데도 잠시 뒤 나가보니 열매가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하루는 붓으로 글을 쓰려는데 어린것이 종이 위에 오줌을 쌌다. 그랬으니 어린것의 부모가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그런데도 그는 조금도 언 잖은 기색 없이 다만 손으로 닦을 뿐이었다. 집안의 종을 대우하는데도 너그러워 심하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하기를 즐겨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친족 중에 고아나 과부가 있어 빈궁하면 반드시 재산을 나누어 그들을 도왔다고 한다.
2022년 10월 일
한국도덕운동협회 인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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