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8월 회보준비
韓國道德運動協會仁川廣域市支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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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푸시킨은 20대의 7년을 유배지에서...
전반부는 남쪽 오데사 부근에서, 후반부는 북쪽 시골 영지에서 지냈는데, 북쪽 유배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한 편의 짧은 시를 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괴로운 법. 모든 것이 순간이고, 지나가리니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우리." 스물여섯 살의 푸시킨은 이웃에 살던 열다섯 살짜리 귀족 소녀의 앨범(시화첩)에 이 시를 써주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저씨'가 연 하디 연한 삶의 꽃봉오리에 인생 조언을 해준 셈이다. 머지않아 밀어닥칠 거친 비바람은 상상 못 한 채 마냥 밝고 행복하기만 한 어린 처녀가 사랑스럽고 도 안 쓰러웠을 법하다. 푸시킨도 우리처럼 '콜레라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1830년, 치사율 50%의 역병으로 모스크바는 봉쇄되었고, 시인은 약혼녀를 그곳에 남겨둔 채 석 달간 작은 영지에서 자가 격리를 하게 되었다.
그가 죽음이 코앞까지 밀어닥쳤던 그때, 그는 또 쓴다. "그러나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생각하고 고통 받고자. 슬픔과 걱정과 불안 한가운데 내게도 기쁨이 있으리니." 그는 삶을 사랑했다. 예전엔 푸시킨 시가 너무 평범하고 산문적이어서 이게 뭔가 싶었다.그런데 지금 이만큼 살고 보니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진짜이고 진리이다.나 역시 지나간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또 행여 그 삶이 꺾일까 염려하기도 했다.학생들과 이 시를 붓글씨로 쓰거나 읽을 때면, 그들이 헤쳐가야 할 고통이 걱정돼 예방약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어진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국 현대사의 증언이다.
해방기에 처음 소개되어 개발연대기를 거치면서는 잘살아보겠다는 희망의 깃대였다. 공장 작업대에, 만원 버스 문짝에, 고시생 책상 귀퉁이에, 누구 시인지도 모른 채 붙어 있곤 했다. 90년대 들어 세월이 좋아졌는지 (1995년 당시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행복하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기록이 있다!)
오늘 애송하는 시는 1960~70년대 그 희망가가 아닐 것이다.
삶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고달픔은 과거의 역경과는 거리가 멀다. 예전에는 미래를 향해 달리느라 괴로웠는데, 요즘 청년들은 '미래가 없다'며 괴로워한다. 전에는 앞만 보느라 정신없었는데, 이제는 '지나간 것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미래를 향한 마음이 없으면, 현재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 오늘의 절망감은 물리적 실존 너머로 뻗쳐 있다.그래서 푸시킨 시를 다시 연상하며 소개 하고 져 한다.
현실이 차단해버린 희망의 불씨를 시(노래)로써 되살리면서, 낙심한 서로를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는 치유 없는 시대를 치유해가는 것이다......
-*조건 없이 희생하는 부모에게
한 노사관의 청빈 사에 길이 빛나는 이야기.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였고, 영국 수상을 역임한 바 있는 웰링턴 장군의 승전 기념일 만찬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웰링턴 장군이 애장품인 다이아몬드 장식이 되어 있는 담뱃갑을 손님들에게 자랑하였다. 그런데 만찬회가 끝날 무렵, 그 담뱃갑이 분실되어 만찬회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그 담뱃갑을 찾기 위해 한 손님이 “여기오신 모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포켓을 검사하자”고 제의하였고, 모든 참가자들이 이에 동의하였는데 노사관이 적극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런데 다른 손님들은 노사관의 반대를 무시하고 끝내 포켓 검사를 강행하려 하자, 노사관은 화를 벌컥 내었다.
난처해진 웰링턴 장군이,"자 여러분! 이제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잊어버립시다." 라고 제안했지만, 노사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나가 버렸다. 혐의는 물론 노 사관에게 씌워졌다, 해가 바뀌어 다음해에도 승전 기념일 만찬회 모임이 있었다.
웰링턴 장군은 작년 기념일 이후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았던 옷을 입고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담뱃갑이 윗 주머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아연해진 웰링턴 장군은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그를 찾았다.
그가 누구이며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노사관은 작고 초라한 어느 다락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장군은 노 사관에게,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사실은 나 자신도 당신을 의심하고 있었소. 깊이 사과하오."그리고 나서 장군이 궁금하게 여겼던 것을 한 가지 물어 보았다."어째서 그 때 모두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억울한 의심을 받았소?" 노사관은 얼굴을 붉히며 고백했다."사실은 그 때 내 주머니에는 먹다 남은 작은 조각의 고기와 빵 조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굶고 있었으니까요." 그 당시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고 술회했다. 장군은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더니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그렇다, 있는 사람이 그 사정을 어떻게 알까마는 옛말에 ‘눈물 섞인 빵을 먹어보기 전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격언이 있듯이 노 사관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명예와 수치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청 빈사에 빛나는 한 노사관의 가족사랑 이야기는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조건 없이 희생하는 부모에게 효도로서 도리를 다하자.
-* 회원 여러분께 *-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에 인생을 즐기십시오,
늙어서는 후회할일은 하지 마세요?
당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당신 자신이 힘써야...
후회하지 마시고 걸음걸이가 힘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다니십시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에 인생을 즐기십시오,
즐거운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정신은 신에게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맨 마지막 까지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멋진 사람...
기다려 주지 않는 세월처럼 이다음 형편이 되면 이란 변명은 안 하니만 못합니다.
2024년 8월 13일
<사회단체법인> 한국도덕운동협회 인천지회 회장